성경본문 : 욥기3장17절-26절
묵상본문 : 요한계시록9장5절-6절
묵상제목 : 그날에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묵상찬송 : 시편 25편
성경본문 : 욥기3장17절-26절
욥 3: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욥 3: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욥 3: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 3:20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욥 3: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욥 3: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욥 3:23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욥 3: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욥 3: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묵상본문 : 요한계시록9장5절-6절
계 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계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묵상내용
우리는 종종 안락사, 곧 자비롭게 죽게 하는 것에 관해 듣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생명을 끝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이나 장애나 심한 고통 때문에 그들이 그 일을 결정했을 때에 견딜 수 없거나 혹은 무감해집니다. 우리 본문은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죽기를 원하지만 불가능하게 되는 일 일어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계9:6). 그것은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이 가능성을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죽기를 원할 때에 여러분은 그렇게 할 방법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죽기를 시도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은 비참함을 의미하고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삶이고 지루하게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쏘는 동시에 전갈인 메뚜기들을 봅니다. 전갈은 물 뿐만 아니라 꿈틀거립니다. 그러나 전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독이 있는 꼬리로 씁니다. 전갈에게 쏘여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고통과 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귀신들이 행한 것입니다. 전체 사회는 부도덕, 이기주의, 서로 미워함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은 이 오염에 대해 사람들 혹은 귀신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스스로 그것을 가져옵니다.
이때는 너무나 무서워서 사람들이 도망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데도 가지 못합니다. 아무데도 이 고통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귀신들 배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욥3:21)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욥3:22). 죽음은 생명보다 더 좋은 것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포로 시대에 야웨께서는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가 그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렘8:3;7:34). 그것은 마지막 때에 다시 한번 참된 것이 될 것입니다. 배교한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의 소리,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계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