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3장1절-16절

사랑이 2025.09.26 10:37 조회 수 : 29

성경읽기 : 히브리서121-6

성경본문 : 빌립보서31-16

묵상제목 : 완전을 향하여 달려감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묵상내용

성도인 바울은 이미 이르렀습니까? 로마 교회는 바울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자신의 선행이 커서 직접적으로 하늘로 갈 수 있는 그런 성도라는 생각을 수정해야 합니까? 바울은 완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바울이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울은 운동선수, 도보경주의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이는 우리가 히브리서 12장에서 읽은 것과 같은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바울은 몇 가지 재고조사를 실행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평가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을지라도, 심지어 주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려고 준비했을지라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현실적인 전망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아직 자신의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직 완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평가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개혁교회의 성도들로서 우리는 이런 완전주의에 대해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제 44주일에서 우리는 예를 들면 바울과 같은 어떤 사람처럼 심지어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단지 순종의 적은 시작을 할 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신앙고백을 가지고서 어떤 완전의 이상을 받아들이는 개혁교회의 신자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월계관을 의지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개혁교회 생활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르게 될 것을 주장하는데 위험스럽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생에서 완전에 이르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질을 우리가 점점 더 완전에 이르지 못하는 변명으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잉태되고 태어났고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고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사실 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주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낙관적이고 수동적이며 비활동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바울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따라야 할 모범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촛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사도의 모델은 우리에게 열심히 완전을 추구하도록 요청합니다.

완전에 대한 추구에서 바울은 흐트러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경주자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심점의 상실은 패배를 가져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도 또한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예를 들면, 기도생활에서 중심을 잃게 되고 부의 매력, 여행, 걱정, , 스포츠와 같은 것에 빠져서 우리의 한 목적을 상실하도록 허용하면, 그때 우리는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내가 행할 한 가지 일에 단 하나의 집중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과 친밀한 이런 바울의 태도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생애를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뒤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쟁기를 잡고서 앞만 보셨습니다. 일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직면했을 때에도 단호하게 앞을 내다보시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들은 뒤에 남겨두고 온 것들을 잊을 수 없었던 롯의 아내처럼 되지 않아야 합니다. 경기가 끝났을 때에 승리자가 시상대에 서기 위해서 모입니다. 심지어 올림픽에서 그렇게 하고 오늘날 중요한 경기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 일지라도 말입니다. 상은 화관과 많은 돈과 특권입니다. 바울은 그 예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여기에서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먼저 마침의 문제가 아니라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받아야 할 상은 달려갈 것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럽고 복된 부활 영광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새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을 추구하도록 자극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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