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4장17절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보호되고, 그 백성들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성경본문 : 욥기41-21

묵상본문 : 욥기417

묵상제목 :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보호되고, 그 백성들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편찬송 :

성경본문 : 욥기41-21

4: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4: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4:3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4:4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4:5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4:6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4:8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4: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4: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4:11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4:12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4:13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4: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4: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4:16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4:18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4:20 조석 사이에 멸한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4:21 장막 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묵상본문 : 욥기417

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묵상내용

4장과 함께 우리는 욥기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35장까지에 걸쳐서 우리는 욥과 그의 친구들의 여러 가지 연설을 듣습니다. 그 친구들 모두는 왜 욥이 그런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문제를 중심으로 토론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한 내기를 이기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 내기는 모든 것이 욥을 대항할 때 욥이 하나님께 작별을 고한다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때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전체 땅 위에서 하나밖에 없는 흠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 욥조차도 그러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악한 공격은 세 친구의 연설에서 가장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욥을 위로하는 대신에 그들은 욥을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야웨께서는 진행되는 논쟁을 허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야웨께서는 욥의 고난이 모든 세대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위로를 위해 성경의 부분을 형성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이고, 제아무리 심한 사단의 공격이 있을지라도, 야웨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들이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보호되고 그들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거절한 것입니다. 그것은 엘리바스가 믿지 않은 것입니다. 전자는 그가 하나님을 미워했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연설로부터 명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진리로 욥을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증대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앞에서 욥의 진술에 의문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의 하나님은 그들의 업적에 따라 피조물을 다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만일 그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받을 때, 그때 하나님은 그들을 반대하심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엘리바스가 우리 본문의 질문에 이르게 된 방식입니다.

그가 정말로 말한 것은 이것입니다. “욥아, 너는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느냐? 너는 아무도 무죄 석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것은 너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이유이다. 만일 네가 오직 너의 죄만 인정하면, 너의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너의 의를 주장하는 한, 야웨께서는 계속해서 너에게 고통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엘리바스가 자기 친구에게 조언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마귀적인 조언입니까! 왜냐하면, 그는 그가 말하는 것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자기 조성자 앞에서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맙시다. 그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그의 의로움은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 안에서 믿음을 통한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야웨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심지어 자신이 그분을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욥이 믿고 살고 야웨를 사랑하는 모든 자를 위해 복음으로 유지하고 계신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환경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여러분의 경험에 의하면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잘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손실에서 욥을 위한, 우리를 위한, 구약과 신약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부요하심입니다. 그것은 오직 야웨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항상 모든 상황에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도록 우리에게 허용하신 것입니다.